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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는 몰타의 매로 잘 알려진 대실 해밋은 하드보일드 소설(1)을 쓰는 작가이다. 흔히 미국 하드보일드를 대표하는 작가로 알려진 레이먼드 챈들러는 대실 해밋의 뒤를 이어 하드보일드의 명맥을 이어왔다고 볼 수 있다.

1995년 미국추리작가협회(the Mystery Writers of America)에서 발표한 시대를 초월하는 최우수 범죄소설 100편(The Top 100 Crime Novels of All Time)을 살펴보면 대실 해밋의 소설 가운데 The Maltese Falcon(몰타의 매), The Thin Man(그림자 없는 남자), Red Harvest(붉은 수확), The Glass Key(유리열쇠)가 포함되어 있어서 대실 해밋의 작품이 어느 정도로 미국 범죄소설의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의 영향력이 현대의 추리소설계에 미치는 영향은 그의 이름과 작품에서 유래된 추리문학상(2)에서 잘 드러내고 있다.


붉은 수확이나 몰타의 매와는 다르게 유리열쇠에는 사립탐정이 등장하지 않는다. 유리열쇠에서 주인공은 보스인 폴 매드빅을 따르는 도박꾼이자 건달로 등장하는 네드 보몬트이다. 그런 점에서 대실 해밋의 이전작품과는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현대의 하드보일드 소설에서도 경찰이나 사립탐정이 주인공으로 등장하지 않는 경우가 흔하지는 않다. 특히 시리즈에서는 더욱 그러한데, 그 이유는 범죄소설(시리즈)에서 사건 해결을 담당하는 주체인 경찰과 사립탐정이 빠진 경우에 소설의 전개가 원활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유리열쇠에서 소설이 진행되는 과정을 들여다보면 폴이 결혼하려고 애쓰는 재닛의 오빠인 테일러 헨리가 의문의 죽음을 당하는 사건이 벌어지지만 이를 해결하려고 뛰어든 이는 네드 보몬트이다. 그렇다고 그가 테일러 헨리의 죽음과 관련된 배후를 찾는데 관심이 집중된 것은 아니다. 네드는 자신의 돈을 가로채고 도망간 데스페인을 찾는데 혈한이 되어있고, 소설을 읽다 보면 과연 주인공들이 테일러의 죽음에 관심이 있기는 한건지 의심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독자에 따라서는 몰타의 매와 비교하여 유리열쇠에 점수를 낮게 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경찰이나 사립탐정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이 유리열쇠가 독자에게 더욱 강한 흥미를 안겨줄 수 있는 양면의 날과 같은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다른 사립탐정소설을 읽다 보면 독자의 포커스가 온통 사립탐정과 그의 주변의 인물에 집중되는 게 사실이다. 사건이 벌어지고 그 사건을 해결하는 탐정에게 관심이 쏠리는 단순한 구조가 일반적인 범죄소설(혹은 탐정소설)이 지니고 있는 한계일 수도 있다. 그런 면에서 유리열쇠는 대실 해밋이 소설의 플롯을 그렇게 의도하였건 그렇지 않건 간에 이전 작품들에 비해서 독자를 빨아들이는 흡인력이 강한 소설로 탄생한것에는 틀림없다. 마치 할런 코벤의 스릴러 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이 든다고 해야 할까? 유리열쇠를 읽으면서 테일러 헨리를 죽인 범인이 누구인지도 중요하지만 그 보다도 주인공인 네드와 폴이 자신들의 인생을 풀어가는 과정이 더욱 흥미로워진다는 점에서 대단히 짜임새가 뛰어난 소설이라는데 이견이 없을 것 같다. 이 작품은 붉은 수확이 발표된 지 불과 2년 만에 나온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대실 해밋의 소설이 진화하였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붉은 수확은 투박하지만 거친 사립탐정소설이라면 유리열쇠는 좀 더 세밀하면서 냉소적인 부분이 덜 가미되었지만 그럼에도 빠른 전개를 보여주는 페이지터너라는 점에서 무척 흥미롭게 읽은 소설이다. 북유럽 최고의 추리문학상인 유리열쇠상의 이름의 유래가 되기에 충분히 걸맞은 대실 해밋의 최고의 작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생각을 해보며 리뷰를 마친다.



(1) 하드보일드 소설: 20세기 초부터 미국 범죄소설의 한 형태로서 나타났으며 Black Mask 매거진을 통해서 본격적으로 발전하게 된다. 하드보일드 소설의 선구자적인 역할을 한 작품이 바로 1929년 작 대실 해밋의 붉은 수확이고, 이후 1939년에 레이먼드 챈들러의 The Big Sleep(빅 슬립; 북하우스, 2004년)가 발표됨으로 범죄소설 역사에서 하드보일드가 하나의 장르로 자리 잡게 된다. 소위 2세대 작가로 불리는 미키 스필레인(마이크 해머 시리즈; 황금가지, 2005년)에 이르러 논리적인 수사 방식을 벗어나 권총과 주먹에 의존하여 사건을 해결하는 남성적이고 터프한 이미지가 강조된 소설로 세분화된다. 일반적으로 하드보일드는 감상적이지 않은 폭력과 섹스의 묘사가 특징이며 현재는 새러 패러츠키와 마이클 코넬리와 같은 미국 작가들이 대표적이다.

참고문헌: A Companion to Crime Fiction(edited by Charles J. Rzepka and Lee Horsley; A John Wiley & Sons, Ltd., Publication, 2010)

(2) 대실 해밋과 관련하여 제정된 추리문학상이 두 개가 있는데 하나는 글래스키상(Glass Key award; 유리열쇠상)으로 소설 유리열쇠에서 그 이름이 유래되었다. 이 상은 스칸디나비아 추리작가협회에서 매년 수여하는 북유럽 최고의 추리문학상으로 1992년 헤닝 만켈의 Faceless Killer가 첫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한국에서 소개된 작품으로는 2003년 아날두르 인드리다손의 Silence of the Grave(무덤의 침묵; 영림카디널, 2006년)와 2005년 수상자 루슬룬드-헬스트럼의 Beast(비스트; 검은 숲, 2011년)가 있다.

다른 하나는 대실 해밋의 이름을 따서 만든 the Hammett Prize(해밋상)인데 국제범죄작가협회의 북미지부에 의해 1991년 제정되었고 주로 캐나다와 미국 작가에게 수여하고 있다. 한국에는 해밋상 수상작 가운데 소개된 작품이 없다. 다만 한국에서 출간된 해밋상 후보작 가운데는 조지 펠레카노스(그는 미국 HBO 범죄드라마 The Wire의 프로듀서로도 알려져 있다)의 사립탐정소설 Derek Strange and Terry Quinn(데릭 스트레인지& 테리 퀸) 시리즈의 Right As Rain(살인자에게 정의는 없다; 황금가지, 2007년), 해리보쉬 시리즈로 잘 알려져 있는 마이클 코넬리의 The Black Echo(블랙 에코; 랜덤하우스코리아, 2010년)와 The Black Ice(블랙 아이스; 랜덤하우스코리아, 2010년), 그리고 Trunk Music(트렁크 뮤직; 랜덤하우스코리아, 2011년)등이 있다.




Posted by 필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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