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여성 성폭력이라는 사회문제를 잘 묘사한 추리소설: 기리노 나쓰오의 '천사에게 버림받은 밤'
추리 소설 베스트 셀러 2011. 6. 5. 14:24 |2004년 ‘아웃’의 영어판이 미국의 대표적 추리문학상 에드거 상 최우수 장편소설 부문에 오르는 기염을 토하며 일본을 넘어 미국에서도 주목받게 된 기리노 나쓰오의 무라노 미로 시리즈 두 번째 작품 ‘천사에게 버림받은 밤’이 오랫동안 기다리던 독자 곁으로 찾아왔다.
어느 날‘성인비디오의 인권을 생각하는 모임’의 대표 와타나베가 여성 사립탐정 무라노 미로를 찾아온다. 와타나베는 대뜸 잇시키 리나라는 내레이터 모델이 출연한 성인 비디오를 틀어서 보여준다. 그리고 실종된 잇시키 리나를 찾아달라는 의뢰를 하게 된다. 무리노는 먼저 잇시키 리나가 출연했던 비디오를 제작한 회사와 가타야마 감독을 찾아가 그녀의 행방을 수소문하지만 헛수고에 그치고 만다. 결국 무라노는 함께 출연하였던 남자 배우 가네코를 만나면 잇시키 리나의 실종에 관한 단서를 찾을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가져보는 가운데 갑작스런 협박전화를 받게 되는데…….
천사에게 버림받은 밤의 주인공은 무라노 미로이다. 여성 사립탐정은 추리소설에서 자주 찾아볼 수 있는 흔한 캐릭터는 아닌 듯 보인다. 미국 하드보일드 소설에서 찾아볼 수 있는 여성 사립탐정은 예를 들어, 문라잇 마일을 마지막 작품으로 종결된 데니스 루헤인의 켄지&제나로 시리즈에서 켄지의 아내로 등장하는 제나로 정도이다. 그리고 대표적인 여성 사립탐정 시리즈는 한국에서는 골드대거상 수상작 ‘블랙리스트’가 소개된바 있는 새러 패러츠키의 V.I. 워쇼스키 시리즈를 들 수 있다. 미국과 일본이라는 배경의 차이는 있지만 워쇼스키와 무라노 미로는 비슷한 캐릭터라고도 볼 수 있다. 경찰이라는 공권력의 틀에 얽매여 있지 않은 사건 조사를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사립탐정은 경찰소설에서 보이는 이상의 자유스러움이 소설에서 드러나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소설에서 사립탐정은 경찰과 용의자, 심지어 일반 사람들로부터 무시당하기 일쑤이고 협박을 받아도 누군가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약점을 가지고 있다. 워쇼스키의 경우도 그렇듯 천사에게 버림받은 밤에서 무라노 미로는 여성이라는 취약점을 고스란히 안고 누군가의 의뢰를 받아서 위험한 사건을 해결하려고 고군분투하는 캐릭터의 성격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헤닝 만켈, 아날두르 인드리다손, 그리고 요 네스뵈 등으로 대표되는 북유럽 경찰소설에 익숙한 독자라면 이야기의 전개가 다소 답답하다고 느낄 수도 있다. 체포 영장이나 수색 영장을 들이대고 강압적으로 수사하며 용의자를 압박하는 강한 형사의 이미지를 사립탐정 소설에서는 느낄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대로 일반 독자들이 경험하기 힘든 사립탐정의 세계를 현실감 있게 간접 경험한다는 의미도 부여할 수 있다고 생각된다. 언제나 경찰이 사건을 해결하지는 않는다. 좌충우돌 조금은 투박하지만 특유의 직관으로 조금씩 사건의 전말에 다가서는 이야기의 전개를 따라가는 그 재미가 바로 사립탐정 무라노 미로 시리즈를 좋아하는 추리문학 매니아들이 꼽는 주된 매력이 아닐까 싶다.
기리노 나쓰오. 그녀의 소설은 ‘천사에게 버림받은 밤’뿐만 아니라 다른 작품에서도 드러나듯 사회의식을 담은 추리소설이라는 점에서 독자를 사로잡는 고급스러운 매력이 있다. 다소 불편한 심기로 바라볼 수도 있는 사회의 부조리와 문제들을 추리소설로 승화시키는 그녀의 필력이 어김없이 드러나는 소설이 바로 ‘천사에게 버림받은 밤’이다. 우리는 그녀의 소설을 통해서 사회 속에 존재하는 여러 문제들을 바라보고 고민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점에서 단순히 흥미로움을 추구하는 여타 추리소설 이상의 의미를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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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론 님의 좋은 리뷰 잘 읽었습니다. 서포터즈로 좋은 글을 적여주셔서 출판사에서도 감사하게 생각하겠습니다. ^^
그런데 미로 시리즈도 순서대로 나오지 않는 모양이네요? 이 작품은 미로 시리즈 초기작인 것 같은데 '다크'가 먼저 번역되지 않았었는지요?
일창님의 말씀대로 다크가 먼저 번역되었더군요.^^ 영미권 소설이건 일본 소설이건 시리즈 순서대로 출간하지 않는건 문제라고 봅니다.^^
아, 이상하다 싶었는데 출간순서가 바뀌었군요. 인기가 많은 일본 추리소설도 그렇다니 아쉽습니다.
번역자들이 임의대로 원고를 출판사에 내서 번역서가 나오는 경우가 있어서 그런듯 보입니다. 출판사에서 주도적으로 시리즈를 총괄해서 순서대로 출간하는 경우에는 이러한 문제가 없겠지만 말이지요.^^
그렇군요. 출판사에서 좀 더 시리즈에 대한 장기적 안목과 장악력을 갖췄으면 좋겠는데, 아직까지는 주먹구구라고 해야 하나 그런 식인가 봅니다.
발 맥더미드 신작 소식을 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 요즘 추리문학 정보를 따로 알아보지 않고 필론 님의 알찬 블로그만 드나들고 있어서 제가 소식이 늦네요. ^^
제가 발 맥더미드 팬은 아니지만 혹시나 신작 소식이 있나 해서 한번 살펴보다가 알게 되었습니다.^^ 올해 9월에 하드 커버가 출간되려는것 같더군요.
신작 스케줄을 그렇게 미리 챙기시는 것이 저는 신기합니다. 책 나올 때마다 헉헉 따라가기 바빠서요. ^^
오늘 뉴스 보니까 번역가 정태원 님이 별세하셨다고 하네요. 추리문학에 애정이 많아서 국내에서는 이 분야를 개척하신 분으로 알고 있는데 소식 듣고 안타까웠습니다.
제가 알거나 관심있는 작가의 정보에만 신경쓰는 것이니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일창님의 글처럼 저도 신작 정보나 추리문학상 수상작을 자세하게 소개하고 싶지만 여의치가 않네요.^^
필론님은 주로 섬세한 작품들을 좋아하시는 것 같은데 어떤 작품들을 좋아하세요?
저는 헤닝만켈의 발란더 시리즈를 뒤늦게 읽기 시작해서 저번주에 1권 끝냈습니다. 아~ 연달아 2권 읽고 싶었지만 잠시 쉬는 시간을 갖기로 하고 케이트 앳킨슨의 케이스 히스토리즈를 읽기 시작했습니다. 아직 초반읽고 있어서 재밌다고 말하기는 이르지만 벌써부터 감이 옵니다. 이 작가를 좋아할것 같습니다. 사실 이책 읽기전에 요 네스보의 스노우맨을 읽어볼까해서 몇장 읽었는데, 헤닝 만켈 책을 읽은지 얼마 안되어서 그런지 요 네스보의 스타일이 조금은 낯설더라구요. 그래서 다음기회로 넘겼습니다.
요 네스뵈는 저도 낯설더군요.^^ 벙이벙이님의 말씀에 공감이 갑니다. 저의 취향에 안맞아서 그런건지도 모르고 아니면 북유럽 스릴러라고 하기에는 미국적인 하드 보일드 성향이 강해서 그런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중견작가 가운데에는 마이클 코넬리와 피터 로빈슨을 가장 좋아합니다. 경찰 소설을 주로 읽는 편이라서 그런가봅니다.^^
발란더 시리즈를 읽으신다니 부럽습니다.^^ 가끔 리뷰도 올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리뷰를 올려야 할텐데요. 자꾸만 미뤄지고 있습니다.(제 글솜씨를 잘 알고 있어서 미루고 있습니다.)
경찰소설을 주로 읽으시는 군요. 마이클 코넬리는 아는데 피터 로빈슨은 잘 모르겠습니다. 필론님이 좋아하신다니 기회가 있으면 한번 읽어봐야 겠습니다.
마이클 코넬리는 하드보일드적인 경향이 강해서 처음부터 좋아했던 작가는 아니었습니다. 아날두르 인드리다손, 피터 로빈슨의 소설이 저의 취향에 잘 맞는 편이더군요. 이 두 작가는 헤닝 만켈과도 작품의 성향이 좀 비슷한것 같습니다. 유럽 특유의 경찰소설이지요. 발란더 시리즈를 읽으시면 나중에 드라마 발란더도 보시면 만족해 하시리라고 생각합니다.^^ 범죄 드라마 중에서는 최고인듯 싶더군요.^^
헤닝 만켈의 작품 성향과 비슷하다고 말하시니 흥미가 생깁니다. 한국사이트에서 피터 로빈슨의 책을 검색해보니 없더군요. 아직 번역된 책이 없나 봅니다.
드라마 발란더는 나중에 꼭 챙겨보도록 하겠습니다. 재미있을것 같습니다.
예. 피터 로빈슨이 아직 한국에서 거의 알려지지 않은 작가인것 같더군요. 벙이벙이님께서 유럽의 경찰소설을 좋아하신다면 피터 로빈슨이나 아날두르 인드리다손의 작품도 즐기실 수 있으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비밀댓글입니다
제가 미안해서 그런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