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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터 그래비의 ‘고대 이스라엘의 역사’는 저자서문에서 개론서라는 언급에서 짐작해볼 수 있듯이 성서학 혹은 고대 근동학 전공자들을 위한 입문서로서의 성격을 강하게 띠고 있는 책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일반 독자들이 이 책을 읽을 때 이해하기 어렵다는 의미는 아니겠지만 저자의 글 쓰는 방식이나 방대한 참고문헌을 볼 때 주 독자층이 일반인이 아님은 분명한 사실이다. 만약 일반인이 고대 이스라엘 역사에 관심을 가지고 이 책을 읽게 된다면 부딪쳐야할 신학적 그리고 역사학적인 방법론적 어려움이 있는데 그 점은 바로 종교성의 패러다임을 벗어놓고 그래비의 책을 읽어야한다는 점이다. 마치 삼국연의를 읽어본 독자들(혹은 일부 중국인들)이 삼국연의의 내용이 실제로 중국의 삼국시대에 일어난 사건이라고 믿는(물론 일부는 역사적 사건에 근거하고 있지만)것과 마찬가지로 성서속의 내용이 모두 역사적 사실이라고 믿는 일부 독자들에게 ‘고대 이스라엘의 역사’는 성서가 가지고 있는 진실과 허구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도전적인 책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이 책에서 서술하는 족장시대와 출애굽과 같은 성서의 본문이 가지고 있는 역사적 허구성으로 인해서 독자들은 적지 않은 충격을 받을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현재 영미권 성서학계의 현실은 말 그대로 회의적인 의견, 소위 미니멀리스트라고 불리는 학자들의 의견이 두드러지는 게 사실이다. 심지어 다윗과 솔로몬(토마스 톰슨과 같은 미니멀리스트 성서학자가 주장하는)의 시대도 성서에 근거한 역사적 재구성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하는 가운데 미니멀리스트(minimalist)와 맥시멀리스트(maximalist)간의 중재와 대화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고 있다. 이러한 시점에서 등장한 그래비의 책은 다소 중간자적인 입장을 대변하고 미니멀리스트와 맥시멀리스트간의 교착상태를 중재하려는 노력을 기울이는 책이라고 볼 수 있다. 그는 이 책에서 이러한 큰 질문을 던지고 있다. 우리는 고대 이스라엘의 역사에 대해서 어떤 방식으로 알고 있는가? 그리고 무엇을 얼마나 알고 있는가?

 

이 책의 구성을 잠시 살펴보자면, 1부 고대 이스라엘 역사의 연구에 관한 원칙과 방법은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을 얻고자 하는 서술이다. 1부에서 그래비는 그동안 성서학자들이 사용한 고대 이스라엘 역사학의 방법론을 열거하고 종합적인 분석을 하고 있다. 여기에는 역사학으로부터 사회과학, 고고학, 민족성, 신근본주의, 맥스멀리스트와 미니멀리스트의 논쟁에 이르는 일련의 문제들을 다룬다. 2부 역사적 연구에서는 중기 및 후기 청동기부터 철기시대 남유다 왕국의 멸망에 이르는 시기에 걸쳐서 벌어진 고대 이스라엘 역사를 고대 근동과 성서에 근거하여 비평적으로 재구성하고 있다. 2부에서는 족장시대와 출애굽의 역사성 문제, 왕정 성립의 문제, 문자사용의 문제, 다윗과 솔로몬의 통치와 관련된 문제들, 북왕국의 발흥과 멸망의 문제, 유다의 부흥과 쇠퇴 등의 이슈를 다루고 있다. 출애굽을 기록한 성서의 허구성을 논의하면서 자신의 의견을 고집스럽게 우기거나 하지 않고, 여러 성서학자들의 논문과 의견을 종합해서 9가지로 들어서 체계적으로 설명한 저자의 분석은 독자 개개인이 저자의 의견을 받아들이건 그렇지 않건 간에 긍정적으로 보고 싶다. 예를 들어, 고고학적 증거를 살펴보면, 만약 출애굽이 있었다면 그 정도의 큰 규모의 사건은 반드시 고고학적 유물을 남길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성서 민수기에 언급된 40년간의 방랑생활은 주로 가데스 바네아 근처에서 이루어졌다. 고고학자들의 조사에 의하면 시내(시나이)와 남부 팔레스타인에서는 많은 수의 인구가 살았던 흔적이 전혀 없다는 점을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단지 성서를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고고학 자료와 성서의 본문을 비평적으로 분석하고 종합한다는 점에서 이 책의 장점이 드러난다고 볼 수 있다.

 

3부 결론에서 저자는 이스라엘과 유다의 역사에 관해 말할 수 있는 점은 무엇인가라는 원론적인 질문에 답하며 책을 마치고 있다. 저자는 고대 이스라엘 전체 역사를 요약하면서 역사 서술의 방법론적 원리들을 다시 제시한다. 결론에서 저자가 독자들에게 말하고자 하는 핵심요소는 이스라엘 역사 서술(혹은 역사 재구성)에서 방법론적인 오류를 범하지 않도록(예를 들어, 성서를 지나치게 배척하거나 혹은 지나치게 맹신하는)주의해야 한다고 강조한다는 점이다. 비록 성서는 2차자료이지만 특히 철기시대의 이스라엘과 유다의 역사를 재구성함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자료이고 이를 인정하는 것이 현재 미니멀리스트와 맥시멀리스트의 논쟁으로 불거진 고대 이스라엘의 역사를 바로 서술하는 중요한 시발점이 될 수 있다고 저자는 믿고 있다.

 

‘고대 이스라엘 역사’를 읽으면서 한 가지 단점 혹은 아쉬운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에서 채택한 APA 스타일(본문주에 각종 참고문헌을 인용하는 방식)이 상당수의 인문학 서적에서 사용되고는 있지만 일반 독자나 학부생을 위한 개론서라면 본문주 보다는 후주를 사용해서 본문을 읽는 독자들이 인용과 참고문헌으로 인해서 혼란을 겪지 않도록 배려하였더라면 하는 바람은 있다. 예를 들어, 이스라엘 핑켈슈타인의 'the Bible Unearthed(성경: 고고학인가 전설인가)'처럼 이 책의 저자 그래비도 어느 정도는 일반 독자를 염두에 둔 책의 구성을 계획했다면 바람직했을 것이다.

비록 아쉬운 점은 있지만 고대 이스라엘 역사에 관한 학술서적 혹은 개론서들이 번역서로서 많이 출간되지 않은 한국의 상황을 감안하면 저자 레스터 그래비의 이 개론서는 학술서로서 큰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자신의 의견을 이끌어내기 위해서 다른 학자들의 의견과 논쟁점을 체계적인 방식으로 논의하고 종합하는 학술서는 드물다는 점에서 볼 때, 일반 독자들도 이스라엘 역사와 관련한 학계의 논쟁과 역사적인 쟁점에 관심이 있다면 이 책을 통해서 고대 이스라엘 역사에 관해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으리라고 확신하며 ‘고대 이스라엘 역사’를 추천해본다.

 

함께 읽으면 좋은 고대 근동 시리즈

 

 

에릭 클라인의 '성서 고고학'

기독교문서선교회에서 출간한 에릭 H. 클라인 교수의 이 책은 현재 성서학계와 고고학계가 안고 있는 고민과 앞으로의 과제를 잘 설명한 책이라고 볼 수 있다. 보수적인 관점과 회의적인 과점, 어느 것에도 치우치지 않은 균형잡힌 견해로 관련 학과의 학생이나 전문가뿐만 아니라 비전문가나 일반 독자들이 가급적 이해하기 쉽도록 명료하게 설명하여 성서 고고학 개론서로서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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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의 역사가 요세푸스가 쓴 ‘유대전쟁사’는 제목만으로 보면 독자들에게 오해를 줄 수 있는 여지가 충분히 있다. ‘유대’라는 말 때문에 기독교와 무슨 관계가 있는 지루한 성서역사 뭐 그런 것이 아닐까, 혹은 어떻게 학술명저번역총서 시리즈에 들어가게 되었나 하는 의구심을 갖는 독자들도 있으리라 생각된다. 그 점에 관해서 한 가지 설명하자면 ‘유대전쟁사’는 유대(지금의 이스라엘)가 로마제국을 상대로 기원후 66년부터 70년에 이르기까지 벌인 반란을 기록한 책이다. 저자 요세푸스는 갈릴리를 담당하던 유대인 반란군의 수장이었고 로마 장군 베스파시안(황제가 되기 전)에게 사로잡혀서 그 이후에 로마의 독자들을 대상으로 헬라어 역사서를 완성하게 되었다. ‘유대전쟁사’ 뿐만 아니라 그의 ‘유대고대사’는 기원전 200년부터 기원후 75년 정도까지의 로마, 시리아, 특히 유대역사의 재구성에 꼭 필요한 주요자료(primary source)이다.

 

‘유대전쟁사’가 흥미를 끄는 이유 중 하나는 등장인물에 있다. 로마 역사가 수에토니우스의 ’열두 명의 카이사르’에 등장하는 베스파시안과 티투스는 장군의 신분에서 로마의 황제가 되는 로마제국의 역사에서 중요한 인물들이다. 그들이 황제가 되기 전에 유대의 반란을 진압했다는 사실을 아는 이들은 드물 것이다. 베스파시안과 티투스가 ‘유대 전쟁사’에 등장한다는 것만으로도 또 다른 로마 문학을 읽는 듯한 재미를 개인적으로 느꼈는데 그런 점에서 요세푸스의 ‘유대전쟁사’를 현대에 살고 있는 독자들이 읽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행운이라는 생각이 든다.

‘유대전쟁사’의 한국어 번역본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 동안 달산 출판사의 요세푸스 전집과 김지찬 역자의 요세푸스 번역본이 있어왔지만, 두 번역본 모두 영어 중역본이고 25년 전에 출간되어 한글 맞춤법에 근거한 인명과 지명이 사용되지 않아 오래된 번역본이라는 인식을 가지기에 충분하다. 그래서 상당수 전공자들은 로엡(Loeb Classical Library) 하버드 판에 의존하거나, 최근 들어 2000년을 기점으로 스티브 메이슨의 주도로 브릴(Brill) 프로젝트란 이름하에 요세푸스의 전 작품이 주석과 더불어 새로운 번역서로 출간되고 있다는 점을 기대하고 있다. 비록 ‘유대전쟁사’만 이긴 하지만 헬라어 원전 번역으로 한국에서도 번역본이 나온 점에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먼저 단점부터 살펴보겠다. 이 번역본은 헬라어 원문과 비교했을 때 번역상의 여러 오류들이 발견된다. 또한 공역자 두 명이 용어의 통일성을 신중하게 검토하지 않은 부분이 있다.

한 부분만 예를 들어, 5권 527(173 페이지) 173페이지 이전까지는 젤롯인으로 번역하던 것을 두번째 번역자로 바뀌고 나서 173 페이지부터는 젤롯당으로 번역하고 있다는 점은 문제로 지적할 수밖에 없다.

물론 어느 책이나 완벽할 수는 없지만 다소 교정(proofreading)을 꼼꼼하게 하지 않은 듯한 느낌이 들어 실망스럽다. 다른 한 가지 점은 주석(commentary)이 다소 미흡하다는 것이다. 더구나 책에 포함된 주석의 대부분은 ‘유대고대사’ 나 ‘자서전’과의 비교이거나, 로엡 시리즈의 영어번역본의 주석을 그대로 인용하고 있어서 학문적인 완성도가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책 후반부에 번역 원칙(translator’s note)을 두어 번역자가 어떠한 기준으로 헬라어(그리스어) 원전 번역에 임했는지 첨가한 점은 학자다운 점을 잘 드러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번역자들이 인정 하듯이 독자에게 익숙한 고유명사의 사용을 원칙으로 함으로써 다소 일관성이 없는 번역이 된 점은 지적하고 싶다. 성서를 알고 있는 독자에게 익숙한 고유명사를 사용하려면 이 책에서도 언급하고 있는 대표적인 로엡 시리즈의 영어 번역본(Loeb Classical Library)에 따라서 헬라어나 라틴어 용법이 아닌 영어식으로, 예를 들어 ‘베스파시안’, ‘헤롯’, 이렇게 일관되게 번역했더라면 더 나은 번역본이 되었을 것 같다. 헬라어 본문에 관련된 결정적인 단점은 번역자들이 출판 기술적인 문제로 돌린 바로 헬라어 본문과 한국어 본문의 ‘대조본’으로 되어있지 않고 따로 나뉘어져 있다는 점인데, 비록 그리스어를 배우는 사람들에게는 아쉽긴 하지만 헬라어 본문이 첨가된 점만으로도 충분한 노력이 보인다. 적어도 지금까지의 헬라어(Koine Greek) 또는 희랍어(classical Greek)의 한국어 원전 번역본들 가운데서 그리스어 본문을 실은 번역본은 개인적으로는 처음 본 것 같아 반가울 뿐이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유대전쟁사’는 고대의 유대역사를 공부하는 독자 외에도 로마 역사에 관심 있는 이들까지도 만족시킬 수 있는 책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앞으로 개정판이 출간되어서 번역상의 오류를 수정하는 꼼꼼함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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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필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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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 반 드 미에룹(Marc Van De Mieroop)의 ‘고대 근동 역사(A History of the Ancient Near East)’는 2003년 초판을 시작으로 2007년에는 개정판이 나올 정도로 영미권의 고대 근동학과에서는 대학교재로 호평을 받고 있는 책이다. 아직 한국어 번역본이 없지만 유럽에서 대학교재로 인기가 높은 루카스 드 부아(Lukas de Blois)와 로바르투스 반 데르 스펙(Robartus van der Spek)의 ‘An Introduction to the Ancient World’가 고대 근동 역사와 더불어 지중해의 역사, 즉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역사를 소개하는 입문서라고 한다면 마르크 반 드 미에룹의 책은 단지 고대 근동의 역사만을 심층적으로 설명하는 교재라는 점에서 그 차이가 있다.

 

고대 근동 국가들의 역사를 3부에 걸쳐서 다루고 있는 이 책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1부에서는 도시국가(City State)를 다루고 있다. 기원전 4000년경부터 시작된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도시화로 인해서 도시 국가들이 형성되기 시작한다. 여기에는 인류 역사의 최초도시 우룩(Uruk), 성서에도 등장하는 우르(Ur), 닙푸르(Nippur), 키쉬(Kish)등의 도시국가들이 있다. 그 후 중앙집권화가 이루어지면서 아카드 왕조, 우르의 제 3왕조가 등장한다. 제 2천년기에 접어들면서 북메소포타미아를 삼시-아닷이 통일하고 그 뒤 함무라비가 바빌로니아를 통일하게 된다. 이 시기에 고대 히타이트 제국이 성립한다.

 

2부에서는 영토 국가라는 제목으로 기원전 16세기부터 기원전 9세기에 이르는 시기 동안에 등장한 국가들, 즉 미타니, 신 히타이트왕국, 바빌로니아, 그리고 아시리아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2부의 마지막 장에서는 청동기 시대의 말기에 발생한 기존의 강대국들의 붕괴의 원인과 그 여파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그 여파로 인한 힘의 공백 속에서 등장하게 된 국가가 이스라엘, 블레셋, 그리고 아람이다.

 

3부에서는 철기시대에 고대 근동을 장악했던 아시리아, 바빌로니아, 그리고 페르시아 제국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기원전 8세기경부터 시작된 아시리아의 패권주의는 7세기에 접어들면서 메디아와 신-바빌로니아에 의해 종결이 된다. 신-바빌로니아 제국은 기원전 6세기경 페르시아 제국에 그 주도권이 넘어가고 알렉산더의 정복에 이르기까지 페르시아 제국이 고대 근동의 대부분을 지배하게 된다.

 

 

단점을 먼저 살펴보고자 한다.

 

‘고대 근동 역사’에서 역자가 번역한 고대 근동국가의 왕들의 이름은 한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기존의 성서 역사학자들이 지금까지 보편적으로 쓰던 용어와는 차이가 있다. 그 이유는 고대 근동의 인명과 지명을 성서에 기초하지 않아서 발생하였는데, 사실 이 점이 고대 근동 역사나 고고학에 관한 원서를 한국어로 번역할 때의 문제점이자 어려운 점이라고 볼 수가 있다. 예를 들어서 몇 명만 비교해보자면:

 

아시리아의 왕 티글라스 필레저 --> 디글랏빌레셀

살마네저 --> 살만에셀

에사르하돈 --> 에살하돈

바빌로니아의 왕 악한 므로닥 --> 에윌므로닥(에윌므로닥[열왕기하 25:27-30]은 고대 근동학에서는 또 다른 이름인 아멜마르둑[Amel-Marduk]으로 알려져 있다).

네부카드네자르 --> 느부갓네살

 

오른쪽의 용어가 현재 성서학계에서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왕의 이름이다. 물론 역자의 용어 사용이 잘못되었다고는 볼 수 없지만 고대 근동학을 전공하지 않은 일반인은 기존의 성서 용어에 익숙하기 때문에 역주로 성서적 용어를 보충해 주었더라면 훨씬 배려있는 번역서가 되었을 것 같다는 개인적인 생각이 든다. 만약 한글맞춤법을 잘 따르고 있는 가톨릭 성서에 따라서 앞으로 모든 성서학, 근동학 관련 학술서들이 용어 사용을 통일한다면 가장 이상적이겠지만 그렇게 되기 전에는 다소 오래된 용어를 쓰고 있는 개신교 성서를 전혀 무시하지는 못할 것 같다. 개신교 성서에 근거한 고대 근동국가의 왕들의 이름에 대한 보편적인 표현을 알고자 한다면 ‘이스라엘 역사’(김영진, 이레서원 2006)를 참고하기 바란다.

 

‘고대 근동 역사’의 가장 큰 장점은 기원전 3000에서 323년에 이르는 긴 기간의 고대 근동 역사를 불필요한 내용을 과감히 줄이고 핵심적인 내용만을 담아 압축해서 한 권의 개괄서로 완성했다는 점일 것이다. 또 한 가지는 원서의 지도와 그림을 가감 없이 그대로 실었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 책은 현재 고대 근동 역사를 소개하는 교재와 입문서로써 한국에서 찾아볼 수 있는 책 가운데 단연 으뜸이라고 볼 수 있다. 만약 대학의 교재 또는 개인적인 관심으로 이 책을 구입한다면 적절한 이용방법을 제안하고자 한다. 이 책의 구성상 처음부터 꼼꼼히 통독을 할 필요는 없다. 각 시대 별로 혹은 국가 별로 관심이 있는 내용을 따로 보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다. 특히 철기시대의 아시리아와 바빌로니아의 역사에 대한 설명은 다른 학술서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이다. 그리고 책의 뒤에는 근동국가의 왕조가 연대별로 정리되어있다. 따라서 보충교재로서의 역할로도 이 책의 가치를 충분히 살릴 수 있다.

 

함께 읽으면 좋은 CLC의 고대 근동 시리즈

 레스터 그래비의 고대 이스라엘 역사

 에릭 클라인의 성서 고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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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11.07 01:44 Address Modify/Delete Reply

    비밀댓글입니다

    • BlogIcon 필론 2012.11.07 11:19 신고 Address Modify/Delete

      예, 제 전공이 이 분야와 관련이 있습니다.^^ 여전히 미스터리 소설을 놓지 못하고 있지만 그래도 가끔씩은 전공 서적도 관심을 가지고 읽게 되네요.
      스티브 해밀턴의 소설을 읽으시는군요.^^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저는 최근에 마이클 코넬리의 Drop, 그리고 올해 배리상 신인상 후보작인 앨리스 라플란테의 turn of mind 를 읽었는데 저의 취향에 맞지 않아서 그런지 두 작품 다 실망스럽더군요. 그래서 블로그에 쓸 리뷰가 없네요.^^




2010년 국제 앰네스티 언론상을 수상한 일제 강제동원, 그 알려지지 않은 역사2009년 말 미쓰비시에 강제 동원됐던 근로 정신대 할머니들에게 후생연금 탈퇴 수당금 명목으로 99엔 지불을 판결한 일명 ‘99엔 사건’을 계기로 조심스럽게 본격화 되었다고 한다.‘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 강제동원희생자 등 지원위원회와 같은 정부 기관의 자료를 바탕으로 하여 직접 국내외 인물들을 취재하고 생생한 경험담을 참고로 해서 2010년 초부터 9월까지 잊혀진 만행, 일본 전범기업을 고발한다라는 제목으로 국민일보에 기사가 연재되어 실리게 되었다. ‘일제 강제동원, 그 알려지지 않은 역사는 그 기사를 토대로 정리하여 탄생한 책이라고 볼 수 있다.

 

한국인 대부분이 정신대에 관한 기사를 들어서 알고 있고 종종 언론에서 다루는 것을 기억할 것이다. 하지만 일제의 침략전쟁에 강제로 동원된 조선인 노무자가 많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드물 것이다. 그것도 1939~1945년에 이르는 그다지 길지 않은 기간 동안 일본은 조선의 젊은이들의 노동력 착취를 통해서 전쟁을 수행했었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이 가지고 있는 특징은 일제시대 강제동원 분야 중 징병과 군 위안부 부분은 거의 다루지 않고 징용 부분에 집중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 저자들이 학계의 연구 결과를 검토한 바에 의하면 1939년부터 1945년까지 매년 조선 인구의 30%나 되는 600~700만 명이 일본의 강제동원 현장에 투입됐다고 한다. 그리고 이러한 형태로 동원된 조선인 노무자 중 적게는 10~20만 명, 많게는 50만 명이 탄광이나 광산과 같은 열악한 작업 현장에서 억울한 죽음을 맞게 되었다.

1939
년 중일전쟁을 계기로 일본의 대기업들은 침략전쟁에 조달할 물자를 생산하기 위해 군수기업으로 탈바꿈하고 있었다. 그 당시 대기업들은 생산 인력에 필요한 인원을 모집하기 위해 식민지에 눈을 돌렸고 조선총독부의 협조아래 조선 현지에서 노동자를 거짓된 임금과 대우를 미끼로 모집하게 되었다. 조선인 노동자들은 일단 일본에 끌려오면 홋카이도나 나가사키의 탄광과 같은 일본인이 기피하는 위험한 현장에 투입되었고 작업반장의 철저한 폭력과 인권유린의 환경에서 부실한 식사와 잠자리를 참아가며 생활해야 했다. 이러한 노동력 착취의 중심에는 일본 굴지의 대기업, 특히 미스비시, 미쓰이, 일본제철과 같은 기업들이 있었다.

 

오늘날 우리는 살면서 일제시대의 강제동원을 단순하게 과거 세대의 지나간 아픈 역사로 잊어야만 할 것인가?

 

비록 일본 정부는 1965년 한일협정으로 대일청구권 문제는 끝났다는 입장이라서 지금의 한국 정부가 과거사문제로 일본에 쉽사리 배상을 요구하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강제동원 피해자들에 대한 현황 조사는 물론이고 미불임금 규모, 일본 내 미귀환 유골 파악 등 단순히 지나간 역사라고 묻어두기에는 처리해야 될 문제들이 많다. 이 책에서 주장하는 대로 이런 상황에서 일본 정부에 도의적 책임을 묻기 전에 우리 정부가 먼저 강제동원 문제를 보다 치밀하게 조사하고 피해자들에게 보상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했어야 한다고 본다. 한가지 덧붙이자면 가해자였던 일본 내에서도 강제 동원에 대한 관심을 가진 사학자와 민간 단체의 진실 규명을 위한 노력이 계속되는 순간 우리는 불과 부모님 혹은 조부모님 세대에서 겪은 우리 역사에 대해서 소홀해왔던 것은 아닌지 반성해본다. 한국사회는 지나간 아픈 과거에 지나치게 무관심하며 앞만 바라보고 경제 성장만을 향해 달려왔던 것은 아닌지 다시금 역사를 돌아보고 미래를 준비하는 자세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책 속의 구절

 

그대들 자신의 입으로

그대들 자신이 생전에 받았던 잔학을 증언할 수 없다면

그대들 대신 말할 수 있는 자에게 말하게 하오

-'쥬고엔 고짓센(일본 시인 츠보이 시게지가 쓴 이 시는 1923년 관동대지진 때 조선인들이 무고하게 살해당했던 사건을 추모한 내용이다)

Posted by 필론
TAG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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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도플파란 2011.04.15 23:47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전에 일했던.. 곳이 강제동원관련된 곳이었는데... 정부에서 보상해주는 위원회였어요.. 이름도 길어서 잘 못 외우겠네요..ㅋㅋ 잠시 일할때.. 명부 작성하는데.. 참.. 많은 분이 있구나 했는데..
    나중엔.. 돌아가신분... 도망가신분.. 전쟁이 끝나서 돌아가신분 여러사연이 적혀 있더라구요..
    참... 거시기 했다는... 내일 세미나 가면.. 또 그분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겠네요.. 논문주제 중에 하나가 강제동원이야기라서..

    • BlogIcon 필론 2011.04.16 08:57 신고 Address Modify/Delete

      그러셨군요. 그러면 이 책에 실리지 않은 분들의 안타까운 사연도 많이 들으셨겠네요. 저는 이 책을 읽고 그동안 몰랐었던 일제 시대의 강제 동원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2. 2011.04.25 11:54 Address Modify/Delete Reply

    비밀댓글입니다

  3. BlogIcon 일창 2011.05.05 02:17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오, 안 그래도 두 분 다 역사학 전공이시라 소개해드리려고 했는데 도플파란 님께서 벌써 다녀가셨군요. ^^

    제가 관심이 많은 분야인데 이렇게 좋은 책 읽고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일간지에 삼일절이나 광복절 특집 칼럼으로 소개되도 손색이 없을 듯한 글이네요.

    인터넷 시대가 열리면서 예전처럼 언론이 일방적인 힘을 휘두르지 않게 된 것은 다행이지만, 대신 선정성과 클릭 수가 너무 중요해지다보니 무슨 연예인 이혼설이나 위자료 소송 이런 것에 사회적 에너지가 다소 낭비되는 것 같아 좀 안타깝습니다.

    • BlogIcon 필론 2011.05.05 08:42 신고 Address Modify/Delete

      이 책도 오랜 기간 리서치와 준비를 거쳐서 만들고, 대다수 한국인들도 잘 모르는 강제동원에 대해서 집대성한 책이라 많이 알려지고 이슈화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불과 몇십년전의 일인데 일제 시대에 대한 한국의 아픈 역사가 점점 잊혀지는 것 같아서 안타깝습니다.

  4. BlogIcon 일창 2011.05.05 12:36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필론 님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전쟁 때 강제동원되었던 분들의 손자 세대가 현재 대한민국을 이끌어가는 나이인데, 불과 몇십년 전에 일어났던 일이 까마득하게 느껴지니 사학계나 언론계가 이 이슈를 부각시키지 못한 것이 안타깝습니다.

    • BlogIcon 필론 2011.05.06 08:24 신고 Address Modify/Delete

      저도 이 책을 읽으면서 반성하게 되더군요. 비록 이 책이 국제 엠네스티 상을 수상하긴 했지만 저자들이 무슨 공을 바라고 시작한 일도 아니고, 사회의 무관심 속에서도 과거의 우리 역사를 추적하고 진실을 밝히려는 노력이 책속에 담긴것 같아서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책의 완성도 또한 좋아서 학술 연구용으로도 손색이 없을듯 보이더군요.

  5. BlogIcon 일창 2011.05.06 14:52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필론 님 덕에 좋은 정보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사정이 있었다니 잘 모르던 일이었는데, 저자들의 노력에 진정성과 공익성이 있었던 모양이군요. 책의 완성도도 좋다니 꼭 접해봐야 되겠습니다. 좋은 리뷰 올려주시고 자상하게 설명까지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논픽션 작가로 유명한 트레이시 키더가 쓴 이 실화의 주인공은 아프리카 부룬디 출신의 데오라는 인물이다. 비록 가난했지만 노력으로 의대에 입학해서 꿈을 키워가던 데오에게 어느 날 청천벽력과도 같은 일이 발생하게 되는데, 1988년에 후투족의 반란과 이로 인해 부룬디에 내전이 일어나게 되었다. 이러한 일이 생긴 원인은 식민지 시대(처음에는 독일, 그리고 다음에는 벨기에)로 그 기원을 찾아볼 수 있다. 유럽의 식민 지배국들은 부룬디와 이웃나라 르완다를 직접 통치 하지 않고 소수인 투치족을 중개자로 이용한 간접적인 지배 방식을 택했다. 식민지 시대가 막을 내린 1950-60년대에 부룬디에서는 투치족이 권력을 잡고 있었지만 반대로 르완다에서는 후투족이 투치족 왕족을 밀어내고 그 자리를 차지하였다.

투치족인 데오는 내전의 소용돌이에서 친구의 도움으로 탈출에 성공하여 1994년 미국에 도착하지만, 그에게 뉴욕은 쉽게 다가설 수 없는 하나의 장벽과도 같은 곳이었다. 그는 식료품 배달원으로 하루하루 생계를 유지하고 영어를 구사하지 못하는 점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도 소통할 수 없는 외로운 삶을 살게 된다. 그러다가 그는 자신을 도와주려고 하는 샤론이라는 사람을 만나고, 샤론을 통해서 알게 된 울프 부부의 도움으로 영어를 배우고 임시 거처도 마련하게 된다. 그리고 뉴욕 생활 2년 만에 데오는 컬럼비아 대학에 입학하여 의사가 되기 위한 과정을 밟아간다.

데오는 내전 지역을 다니며 환자를 돌보아주는 PIH(Partners In Health; 건강의 동반자)라는 단체에서 활동을 하면서 고국에 대한 향수를 달래게 된다. 2006년 그는 의대를 중퇴하고 부룬디에 카얀자 병원을 창립하여 무료로 사람들을 치료해주는 봉사를 실천하며 살게 되었다.

 

후투인가 투치인가에 따라서 차별하는 부룬디 사람인 데오의 인생 역경을 보면서 우리는 무엇을 느껴야 될까? 또 한 가지는 미국 생활 2년 만에 아이비리그에 입학한 기적과도 같은 그의 삶을 어떻게 설명할 수가 있을까?

 

데오의 실화를 그가 머물던 뉴욕 할렘가의 어두침침한 공간이 아닌 깔끔한 아파트에서 책으로 접하는 나와 같은 독자가 무언가를 깨달아야 될는지 쉬운 답을 내리기는 어렵다. 이 책을 읽고 데오가 겪은 삶의 무게를 공감한다고 누군가 이야기한다면 그것은 거짓일 것이다. 트레이시 키더가 고백한대로 어느 누가 200달러를 쥐고 뉴욕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겠는가? 다만 불과 30-40년 전 우리의 부모세대들은 6.25라는 전쟁 뒤에 가난한 나라의 재건과 자신들의 삶을 개척하기 위해서 애쓰고 노력해왔었다는 것을 지금의 젊은 우리들은 들어서 알고 있다. 그러한 이전세대의 경험이 부룬디 사람 데오와 똑같은 경험은 아닐지라도 힘든 삶을 견디고자 노력하던 인간의 기본적인 몸부림이라는 의미에서는 같은 맥락이라고 봐도 좋을 것 같다.

마치 한편의 드라마와 같은 삶을 살면서 자신이 불가피하게 떠나온 조국 부룬디를 잊지 않았고, 비록 의사가 되어서 미국에서 편안한 여생을 보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음에도 이를 포기하고 귀국하기로 결심한 데오의 아름답고 기나긴 삶의 여정을 담은 이 책으로 인해서 겨울 동안 얼어있던 나의 마음이 훈훈해짐을 느꼈다.

 

책 속의 구절

불행을 견디기 힘들 때는 좋은 일이 생긴 것처럼 웃어라.”

Posted by 필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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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일창 2011.05.16 07:02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저도 이 작품이 처음 나왔을 때 읽고 블로그에도 소개를 했던 것 같습니다. 미국과 캐나다에서는 열풍이라 불릴 만큼 인기가 높았습니다. 뉴욕에서 인간승리를 한 만큼 미국 독자들은 데오에 대해서 관심이 많더라고요.

    이 책을 읽고 우리가 무엇을 느껴야 할지에 대해서, 필론 님께서 하신 말씀에 동감합니다. 필론 님의 추리소설 리뷰도 좋지만 책과 인물에 대한 애정이 느껴지는 따뜻한 평들이 참 좋아서 계속 보고 싶습니다. ^^

    • BlogIcon 필론 2011.05.16 08:46 신고 Address Modify/Delete

      미국에서도 큰 호응이 있었던 책이군요.^^ 번역서의 출간이 늦다보니 한국에서는 이제야 독자들이 읽게되는것 같습니다. 저의 리뷰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2. BlogIcon 일창 2011.05.17 07:59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예. 그래도 번역서가 1년여 만에 나왔으니까 그리 늦은 편은 아닌 듯 합니다. 아마 원서가 인기가 있었던 책이라 그나마 빨리 번역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미스터리 소설은 몇 년 후에야 번역되는 것이 당연하다보니까 제가 너무 관대하게 생각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네요. ^^ 필론 님 좋은 리뷰 항상 감사하게 읽고 있습니다.

    • BlogIcon 필론 2011.05.17 08:53 신고 Address Modify/Delete

      일창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미스터리 소설은 10년후에 번역서가 나오는것도 예사이니까요.^^ 마이클 코넬리만 보아도 그렇지 않습니까? 번역서를 읽으면서 예전에 박찬호와 함께 다저스에서 뛰었던 노모를 언급한 구절을 읽으면 절로 웃음이 나옵니다.^^ 이미 은퇴한 선수가 나오니까요.^^ 늦게나마 번역서라도 나왔다는점에서 긍정적으로 봐야겠지요.^^

  3. BlogIcon 일창 2011.05.17 16:30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최신 번역서에 노모가 언급되는 경우가 있군요. ^^ '트렁크 뮤직'에 다저스가 나왔던 것 같은데 노모도 언급되었나 봅니다. 박찬호와 노모, 다저스라고 하면 아무래도 IMF 시절이 떠오르는데요... 그러게 생각하니까 시간적 거리감이 확 다가오네요. 지금이라도 나와준 것이 고맙긴 합니다만, 말씀하신대로 역시 아쉬운 점이 있습니다.

    • BlogIcon 필론 2011.05.18 08:33 신고 Address Modify/Delete

      세월이 그만큼 흘렀다는 거지요.^^ 물론 추리문학은 시간의 흐름과는 상관없이 독자들의 사랑을 받는 장르이긴 하지만 그래도 아쉬운 부분이 없지는 않네요.^^



KBS 역사스페셜 특집을 보면서 처음 알게 되었던 홍어 장수 문순득의 표류 이야기를 책으로 다시 읽게 되었다. 지금은 세계화와 문명의 발달로 인해서 동남아시아 정도는 하루 안에 비행기로 오고 가는 세상이 되었지만 200년 전 조선의 상황은 달랐음이 분명하다. 문순득은 주로 죄인들의 유배지였던 우이도에서 홍어를 팔러 출항했다가 조선역사상 최장 거리, 최장 기간을 표류한 인물이다. 그는 생사를 오고 가는 힘든 표류 속에서도 그 나라의 언어와 문화를 배우고 적응하며 고국으로 돌아올 날을 기다리다가 3년여 만에 다시 조선으로 돌아왔다.

문순득의 경험은 그전에도 빈번하게 있었던 다른 사람들의 표류담처럼 곧 잊혀질 수도 있었지만 마침 그때 우이도에서 유배 중이던 실학자 정약전을 만나 표류기를 들려줌으로 인해서 정약전의 글로 재탄생 하였다. 그 이야기가 바로 표해시말이다. 이 기록은 아우 정약용의 제자 이강회를 통해 유암총서에 실렸고 지금까지 전해진다. ‘표해시말은 동아시아 문화교류 측면에서 지금까지도 굉장히 중요한 자료로 평가 받고 있다. 조선 사회에서 천한 신분으로 취급 받던 어부 문순득은 꼼꼼한 관찰과 적극적인 태도로 류큐와 다른 동남아시아의 국가 사람들의 풍습과 문화, 그리고 언어를 배움으로써 지금 비교하여도 그 정확성이 놀라울 정도이다. 예를 들어, 표해시말에 기록된 류큐인의 장례 풍습은 너무나 세밀해서 오키나와의 민속을 연구하는 중요한 자료로서도 손색이 없다. 또한 문순득이 8개월 동안 듣고 기억해서 기록으로 남긴 옛 류큐 언어들은 역사 스페셜 제작진의 취재로 류카 보존 회원들에게 확인할 결과 표기상의 차이는 있지만 놀라울 정도로 일치하고 있다.


류큐를 마지막 항해지로 곧 끝날 것 같던 문순득의 여정이 복잡해지게 된 것은 그가 류큐의 조공선을 타고 중국을 통해서 조선으로 귀향하려던 계획이 또다시 표류라는 거대한 장애물을 만나게 되면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는 여송이라고 불리던 나라, 즉 필리핀에 도착하게 되었다. 문순득은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서 노끈을 꼬아 여송인들에게 팔았다. 필리핀의 일반 사람들이 처음 한국인에 대해서 알게 된 계기는 제2차 세게대전때 일본군으로 강제 동원되어 간 한국인들을 통해서라고 한다. 하지만 이미 200년 전에 문순득은 필리핀 사람들과 어울리며 마치 조선의 민간 사절단과도 같은 역할을 했다고 보아도 무방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그는 마카오를 통해서 중국으로 가게 되고 결국 그리워하던 고향땅을 3년 만에 밟게 되었다.

 

문순득의 표류기에서 후손인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무엇일까?

 

중요한 한가지는 신분 사회라는 계층의 단절 속에서도 일개 어부의 표류담에 귀를 기울이고 배우고자 한 정약전과 정약용의 실학사상에 기초한 열린 자세는 그 시대를 떠나서 지금의 우리에게도 큰 귀감이 될만하다고 볼 수 있겠다. 문순득이 조선에 돌아오게 되자 그의 귀향을 가장 주목하던 이는 다름아닌 유배지에 있던 정약전과 같은 실학자였다. 안타깝게도 그 당시 조선은 문순득에게 관심을 기울이기에는, 그리고 변화하는 세계 정세를 따라가기에는 너무 폐쇄적인 나라였다. 문순득이 표류하면서 얻은 귀한 지식의 가치를 알아준 이는 바로 실학자, 정약전이었다.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이고 개혁을 꿈꾸고자 하는 실학자들에게 문순득의 표류담은 다름아닌 어두운 조선의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는 하나의 사상적 돌파구였던 것이다.


200
년이 지난 오늘날 독자의 한 사람으로써 문순득의 표류기를 읽으면서 단순히 미지의 세계를 탐험한 모험담 정도로만 여긴다면 이 책을 반쪽만 이해한 것은 아닐지 생각해본다. 무엇보다 문순득의 표류기와 경험담을 가감 없이 받아들이고자 노력했던 당시 실학자들의 사상적 고민과 나라를 위한 개혁의 몸부림을 느끼게 되었다는 점에서 이 책의 진정한 가치가 있다고 말하고 싶다.


Posted by 필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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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일창 2011.04.22 17:51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저는 책 제목도 처음 들었습니다. 필론 님 덕에 좋은 책을 알게 되었습니다.

    문순득이 필리핀까지 갔다가 어떻게 마카오를 거쳐서 돌아올 수 있게 된 것인지요? 그냥 남의 배를 얻어타는 식으로 해서 돌아올 수 있게 된 것인가요?

    문순득이 류큐에 몇 달 머물지도 않았는데 그렇게 정확한 언어 기록을 남겼다니 놀랍습니다. 어부였지만 아마 똑똑한 분이었나 보네요.

    책의 가치에 대해서 말씀해주신 부분이 인상 깊습니다. 필론 님처럼 시야가 넓은 분이시기에 하실 수 있는 말씀이 아닌가 싶습니다. ^^

    • BlogIcon 필론 2011.04.26 13:23 신고 Address Modify/Delete

      당시에도 표류자들을 본국으로 송환해주는 절차가 있었다고 하더군요. 청나라와 조선이 상호간에 그런 절차로 표류자들을 돌려보내고 했는가 봅니다. 필리핀이나 다른 나라에 표류하면 청나라를 통해서 조선으로 돌아올수 있었다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