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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키 조는 경찰소설 '제복경관 카와쿠보 시리즈'를 발표했는데 폭설권은 두 번째 작품이다. 첫 번째 작품인 제복수사를 읽어 본 사람은 알겠지만 폭설권에서도 사건이라고는 전혀 없을 것 같은 시골동네, 마치 미국 텍사스주의 보안관과도 같은 역할을 홋카이도의 작은 마을에서 하는 순사부장 카와쿠보가 주인공이다. 비록 카와쿠보가 주인공이긴 하지만 부수적인 인물들이 꽤 많이 나오기 때문에 그다지 단조롭지 않다. 폭설권이라는 책 제목답게 눈이 많이 내린 어느 3월이 시간적 배경이고 폭설로 인해서 마을에 갇히게 된 사람들의 저마다의 이야기들이 모여서 한 권의 작품을 이루고 있다.

야쿠자가 없는 틈을 타서 그들의 집안에 있는 금고를 털고 야쿠자 조장의 여자를 죽이고 도망치는 2인조 강도 중 한 명, 유부녀를 꼬드겨 한 목 잡으려고 협박을 하려고 나선 제비와 그를 만나서 죽여버리겠다는 결심으로 나온 유부녀, 술장사를 하는 엄마가 병원에 입원한 틈에 계부로부터 성폭력을 당하고 집을 나온 여고생과 그녀를 태워준 트럭기사, 회사의 돈을 털어서 도망가려는 불치의 병에 걸린 회사원 그리고 그냥 휴가를 즐기러 온 노부부와 팬션주인 부부. 이 모든 사람이 눈으로 인해 팬션에 머물게 되고 팬션의 보일러가 고장 난 관계로 모두 레스토랑에 모여서 텔레비젼을 보다가 수배가 걸린 강도를 알아보고 팬션은 아수라장이 된다. 그 와중에 핸드폰을 숨겼던 제비는 죽음을 당하고 팬션은 사건현장이 되어버린다. 한편 동네에서는 빚을 지고 자신이 빚을 갚겠다고 야쿠자에 끌려간 여자가 시체로 발견되고 그 여자를 협박한 것이 야쿠자의 집에서 보초를 서던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피해자에서 용의자로 신분이 바뀐다.

2인조 강도 중 다른 한 명은 눈길에 사고를 당하고 우연히 회사의 돈을 털어 도망가려는 사람을 만나 돈가방을 중요한 물건이 들어있는 가방이라고 거짓말을 하고 맡기고 뒤처리를 부탁하지만 눈길에 도와줄 사람은 나타나지 않고 회사원은 회사돈을 가져다 놓고 얼결에 생긴 그 돈을 자신이 가지기로 마음을 먹는다. 외부와 연락이 끊긴 팬션에서 사람들은 어떻게 구출되어 나올 수 있을까? 인질로 잡힌 그들이 무사하게 나올까? 그들이 어떻게 강도가 있다는 사실을 경찰에 알릴까? 그 지역 순사부장인 카와쿠보는 이들을 어떻게 구해낼까? 이 소설을 읽으면서 수많은 의문들이 생기지만 생각보다 간단하게 해결되어 버리는 마지막 장면에 긴박감이 한꺼번에 바람에 날리듯 없어진다. 이야기가 전개됨에 비해서 약 두 장도 안 되는 페이지에 결론이 나버려서 조금은 허무할지 몰라도 단칼에 베는 방식의 결말은 일본인 특유의 결단력을 보여주는 듯 하다.

어찌 보면 한 마을의 이야기를 그렸다는 점에서는 애거서 크리스티의 고전 추리소설에 종종 등장하는 장면과도 흡사한 면이 있지만 폭설권에서는 한정된 공간에서 펼쳐지는 후던잇형태의 밀실사건과는 달리 등장 인물들의 생생한 캐릭터 묘사와 홋카이도의 환경적인 배경이 소설에 잘 녹아 들고 있다. 홋카이도에서 나고 자란, 그리고 현재 그곳에 살고 있는 작가답게 작품 속 배경 묘사, 폭설 묘사가 생생하다. 홋카이도를 가보지 않은 독자라도 그곳이 겨울 동안 혹독한 자연환경을 가진 곳일거라는 추측을 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이 소설은 그러한 환경적인 특성을 미스터리 문학에 잘 조화시킨 사사키 조의 상상력과 필력을 느낄 수 있는 좋은 작품이다. 사사키 조의 세번째 작품에서 보여질 카와쿠보의 활약도 무척 기대가 된다.


Posted by 필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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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일창 2011.05.19 14:19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홋카이도가 일본에서는 특이한 자연 환경과 지리적 위치라 홋카이도 배경의 영화나 소설을 보면 독특한 맛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필론 님 리뷰를 읽어보니 '눈폭풍의 산장' 기본 설정에 작가가 훌륭한 필력으로 가혹한 날씨와 캐릭터를 잘 묘사해 얹은 좋은 작품인 듯 하네요. 기회가 되면 읽어봐야겠습니다.

    그런데 일본 소설은 '추상오단장'도 그렇고 '폭설권'도 그렇고, 한글 제목만 들어서는 한자를 유추하기 어렵게 번역제를 짓고 있네요. ^^ 일본 미스터리에 관심이 있는 독자가 주로 읽을 터이니 큰 문제는 없겠지만, 초보자는 다가가기가 좀 어렵지 않을까 쓸데 없는 걱정도 해봅니다.

    • BlogIcon 필론 2011.05.20 08:55 신고 Address Modify/Delete

      마치 일본판 아날두르 인드리다손의 소설을 읽는듯한 이국적인 환경이 잘 조합된 경찰소설이라는 느낌이 들더군요.^^
      저는 원서에 충실한 제목은 비록 한자로 인해서 좀 어색해도 무난하다고 보고 싶더군요. 제이슨 굿윈의 The Janissary Tree를 이상한 '환관 탐정 미스터 야심'이라는 제목으로 번역한것 보다는요.^^
      일창님 저의 리뷰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2. BlogIcon 일창 2011.05.20 18:36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일본판 아이슬란드 이야기라고 하시니 느낌이 잘 전해집니다. 경찰소설이기도 하니 일본의 아날두르 인드리다손이라고 하신 것이 딱 들어맞네요. ^^

    예. 제목을 원서에 충실하게 짓다보니 그리 된 것 같아요. 예로 들어주신 '환관 탐정 미스터 야심' 때문에 웃다가 갑니다. 나름 고심하다가 나온 제목 같긴 하네요. 하하.

    • BlogIcon 필론 2011.05.21 08:16 신고 Address Modify/Delete

      저도 한참 웃었습니다. 가끔씩 보면 이렇게 재미있는 제목으로 번역서가 나오는 경우가 있더군요.^^
      재미있는 제목에 비해서는 한국 독자로부터 외면받아서 그점은 좀 안타깝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