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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형사 유키히라의 살인보고서’를 통해 국내 독자에게도 친숙한 하타 타케히코의 다른 소설 ‘언페어’ 역시 여형사 유키히라가 등장하는 추리소설이다. 한국에서는 ‘여형사 유키히라의 살인보고서’가 먼저 출간되었지만 사실 이 작품은 ‘언페어’의 속편이라고 한다.

소설은 인쇄회사 직원 스즈키 히로무와 고등학교 3학년인 다츠이 마도카가 살해당한 채 발견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사건 현장에서 발견되는 누군가에 의해 일부러 남겨진 책갈피는 사건을 점점 오리무중으로 빠져들게 만든다. 소설의 초반에 등장하는 T.H라는 사람이 썼다는 ‘추리소설’은 사건과 어떠한 연관성이 있는 것일까? 검거율 1위를 자랑하는 유능하면서 거친 유키히라와 후배 형사 안도는 사건에 투입되는데 유키히라가 이 사건도 해결할 수 있을까?


‘언페어’를 읽으면서 주목해볼 점은 유키히라 형사의 캐틱터 묘사이다. 최근 추리소설에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여형사는 그다지 많지 않고 헤닝 만켈의 린다 발란더, 타나 프렌치의 캐시 매덕스, 그리고 앤 클리브스의 베라 스탠호프(이 시리즈를 원작으로 2011년에 만든 영국 ITV 드라마 '베라'는 한국에서 여형사 베라라는 제목으로 범죄드라마 매니아들에게 알려져 있다) 정도가 문득 생각난다. 상당수의 여형사는 소설에서 주인공이기 보다는 보조 역할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여성을 주인공으로 하는 대표적인 추리문학 작가 로라 립먼의 테스 모나한 시리즈나 새러 패러츠키의 워쇼스키 시리즈는 각각 여성 리포터와 사립탐정을 주인공으로 하는 소설이라는 점에서 볼 때 여형사를 내세우는 소설이 점점 드문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경향에는 여형사라는 캐릭터가 가지고 있는 한계 때문인데, 남자 형사의 전유물과도 같은 살인, 폭력사건을 여형사가 주도적으로 수사한다는 것이 소설 속에서도 쉽게 설정하기가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하타 타케히코의 소설에서 유키히라는 어느 정도 예상되는 성격을 표출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경찰직을 수행하는 여형사가 모두 유키히라와 같은 괴짜에다 철인이고, 집안을 지저분하게 어지르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저자는 소설에서 그녀를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여성상과는 거리가 있는 인물로 설정하고 있다. 예를 들어, 유키히라는 마치 집안 살림에는 손을 놓은 듯한 생활을 하고 있다. 그래서 후배 형사 안도는 컵라면과 과자 봉지 그리고 신문이 뒹굴고 있는 그녀의 집에 절대로 흰색 양말을 신고 들어가지 않는다. 심지어 여자임에도 집에서 알몸으로 자는 경우도 있고, 안도가 살인사건으로 인해서 그녀를 한밤중에 깨우러가도 일어나기는커녕 그냥 자는, 마치 남성이 아님에도 마초 분위기를 풍기는 독특한 여형사로서의 캐릭터가 바로 유키히라인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로라 립먼이나 새러 패러츠키의 소설을 읽을 때 간혹 여성 사립탐정의 육체적 또는 정신적 한계를 느끼게 되는데 그러한 점이 바로 추리소설에서 여성이 주인공이 되었을 때 보일 수밖에 없는 단점이자 장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단점은 이야기의 전개에서 용의자와의 대면을 통해 시원스럽게 사건을 해결하지 못하고 사립탐정이라는 직업상의 한계로 인해서 주인공이 오히려 위험에 처하는 경우도 발생한다는 점이다. 장점은 그러한 인간적인 연악함속에서 피해자에 대한 연민과 더불어 끈질긴 추적으로 사건을 해결하는 카타르시스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하타 타케히코의 유키히라는 강한 여형사의 이미지를 보여줌으로 그러한 장단점을 해소하는 소설의 전개를 가져오지만, 자칫 소설속의 여형사의 이미지가 지나치게 허구화된 듯한 느낌을 강하게 준다는 점에서의 한계를 극복하기가 힘들어 보인다. 결국 인간성을 강조한 여성 캐릭터와 사건을 명쾌하게 해결하는 여성 캐릭터사이에서 선택은 독자에게 달려있다. 이러한 선택은 추리소설을 고를 때 작품성을 먼저 우선시할건지 아니면 흥미로움을 우선시할지를 두고 고민하는 것과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작품성 있는 추리소설을 읽고자 한다면 에드거 상 수상작을 읽으면 되겠지만 재미있는 추리소설을 고르는 것은 오히려 더 어려운 과제인 듯 보인다. 독자의 취향이 다르기 때문에 한 작품이 모든 독자층에 어필할 수는 없다. 그래서 ‘언페어’에서 출판 편집자 세자키가 한 이 말이 더 인상적인 것이다. “독자가 책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책이 독자를 선택하는 것이다.”


일본 경찰소설 작가 사사키 조의 작품에서 느낄 수 있는 등장인물의 깊이 있는 묘사가 ‘언페어’에서는 결여되어 있다. 그러나 적어도 독자로 하여금 소설 속에 빠져들게 하는 흡인력과 흥미를 유발한다는 점에서는 하타 타케히코의 소설에게 후한 점수를 주고 싶다. 출판사와 미스터리 작가, 그리고 미스터리 연구 동아리를 소재로 했다는 점도 언페어를 읽으면서 재미를 더 할 수 있는 요소임에 틀림이 없다. 추리소설은 무엇보다 재미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독자 혹은 빠르게 이야기가 전개되는 하드보일드 소설을 선호하는 독자라면 유키히라의 활약이 돋보이는 ‘언페어’를 감히 추천하고 싶다.




Posted by 필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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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부엉이가우는밤 2011.09.11 06:28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독자가 책을 선택하는게 아니라 책이 독자를 선택한다 라는 문장 멋지네요. 필론님 말씀처럼 여성이 주인공이 되면 캐릭터 묘사에도 확실히 한계가 있고 내용에도 한계가 있는것 같습니다. 그리고 대부분 괴짜이구요. 저는 괴이한 성격을 좋아하는 편이라 좋긴하지만요....

    저는 요즘 I.J. Parker의 라쇼몽 게이트를 읽고 있습니다. 오봉 고양이 단편소설로 시작해서 작가의 홈페이지에 있 단편 두작품을 읽고 났더니 스가와라 라는 주인공이 좋아져서 장편작품을 접하개 되었습니다.

    • BlogIcon 필론 2011.09.11 10:18 신고 Address Modify/Delete

      예. 저도 잉그리드 파커의 소설이 흥미롭게 느껴지더군요. 마치 교고쿠 나쓰히코의 소설처럼 고전적인 일본 사회와 문화에 미스터리라는 장르가 혼합되어 독자에게 흥미로움을 주는것 같습니다.^^

  2. BlogIcon 일창 2011.09.16 15:07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필론 님 좋은 글 써주셔서 고맙습니다. 여형사 캐릭터에 대한 분석이 돋보입니다. 전부터 느낀 것이지만 캐릭터 분석을 아주 잘 하시는 것 같습니다. 독서를 오래 했어도 그렇게 종으로 횡으로 잘라서 보지 않으시는 분들도 많은데, 필론 님의 분석은 스포일러 없이도 독자들에게 아주 유용한 도움을 주시는 듯합니다.

    ITV 베라를 국내 독자들도 알고 있군요. 국내 케이블 같은데서 수입을 해서 방송을 해준 것인가요? 한동안 미드니 해서 외화의 인기가 높았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요즘은 체감상 뜸해 보입니다. 수사 시리즈가 많으니 매니아만이 아니고 일반인 중에도 고정된 외화 시청층이 생기면 출판계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 BlogIcon 필론 2011.09.17 10:29 신고 Address Modify/Delete

      일본 추리소설의 리뷰는 한동안은 이것으로 마지막이 될것 같습니다.^^ 적어도 대단한 작품성을 가진 소설을 접하기 전에는 말이지요.
      아직 드라마 베라가 국내 케이블에서 방영하지는 않은걸로 알고 있습니다. 범죄드라마 매니아들은 주로 온라인으로 시청하는것 같더군요.^^

  3. BlogIcon 일창 2011.09.20 02:07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필론 님 서포터즈 활동하시면서 일본 추리소설을 많이 보셔서 물리셨나 봅니다. ^^ 영미 소설 보시고 많이 써주십시오. 일본 소설은 리뷰도 상대적으로 많은 것 같습니다. 물론 필론 님 수준으로 추리소설의 역사를 다 내려다보는 수준의 리뷰는 보기 힘듭니다만...

    베라 방영은 아직 안 했나 보군요. 매니아들이라면 어떻게든 구해서 봤겠지요. ^^ 입소문이 좋으면 방송사에서 수입도 고려할지 모르겠네요. 이번에 종편 신설하면 연예나 드라마 쪽은 시장이 넓어지는가 보던데, 외국 범죄드라마도 그러려는지 모르겠습니다.

    • BlogIcon 필론 2011.09.20 12:31 신고 Address Modify/Delete

      올해는 베라, 더 킬링과 같은 수준 높은 범죄 드라마 덕분에 시청자들의 눈이 즐거워진것 같습니다.^^ 더 킬링은 드라마의 인기덕분에 소설의 집필이 계획되고 있다고 하더군요. 저도 시즌 1을 간간이 보고 있는데 정말 대단한 드라마인것 같습니다. 물론 덴마크 드라마가 아닌 미국판 리메이크라서 느낌은 좀 다르긴 하겠지만요.^^

  4. BlogIcon 일창 2011.09.21 19:13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더 킬링' 소설이 집필 중이로군요. 영화로도 만들어질지도 모르겠네요. ^^

    미국판이긴 하지만 여러모로 미국적이지 않고 북유럽적인 느낌이 납니다. 형사 위주로만 서술하지 않고 사건을 좀 더 위에서 내려다보면서 현실감을 주는 것도 그렇고요.

    미국 시청자들도 이런 드라마를 보면서 북유럽 범죄소설이나 드라마 스타일을 간접적으로 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필론 님께서 높이 평가하시니 저도 쭉 봐야 되겠네요.

  5. BlogIcon 일창 2011.09.24 20:26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그러셨군요. ^^ 저도 좀 찬찬히 보도록 하겠습니다. 필론 님께서 좋다 하시니 기대가 됩니다. 저도 미국판 리메이크라 좀 가벼운게 아닌가 했는데 그렇지 않은 듯 하더라고요. ^^

    필론 님께서 블로그를 몇 달 운영해보시고 그만두실지도 모른다고 하셔서, 그 전에 좋은 글들을 알리고 싶었는데 제가 가입해 있는 곳이 별로 없어서 딱히 홍보를 못했네요. 오늘 생각해보니 오래 전에 가입해있던 영화 동호회가 있는데, 그곳에 추리소설을 좋아하시는 분들도 계셔서 간단히 홍보글을 올렸습니다. 실례가 안 되었으면 합니다.

    http://dvdprime.cultureland.co.kr/bbs/view.asp?major=ME&minor=E1&master_id=149&bbslist_id=1993427

    • BlogIcon 필론 2011.09.26 09:25 신고 Address Modify/Delete

      일창님께서 저의 부족한 블로그를 홍보까지 해주시니 감사합니다만 글의 수준을 볼때 여러가지로 미흡한 점이 많아서 다른 블로거들의 방문을 받을 자격이 될런지 의문이 드네요.^^

  6. BlogIcon 일창 2011.09.26 11:06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글의 수준만 보면 필론 님 블로그가 최고이니 그런 걱정은 마세요. ^^ 필론 님 소개를 보고 책을 주문하신 분도 있다 하시니 뿌듯할 뿐입니다.

    부담 갖지 마시고 편하실대로 운영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블로그 운영해주셔서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 BlogIcon 필론 2011.09.27 08:56 신고 Address Modify/Delete

      일창님께서 늘 저의 블로그에 관심을 가져주시니 감사합니다.^^ 추리소설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늘 부담은 느끼고 있습니다. 좀 더 다양한 글을 올려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서 고민이 많습니다.^^

  7. BlogIcon 새알밭 2013.05.02 01:41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일본 소설들을 좋아하는 편인데 - 물론 번역본으로요 - 캐나다에 살다 보니 기회가 많지 않습니다. 말씀하신 언페어가 무척이나 흥미로워 보입니다. 한 번 찾아봐야겠어요.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 BlogIcon 필론 2013.05.02 20:25 신고 Address Modify/Delete

      새알밭님께서도 일본 소설을 좋아하시는군요.^^ 외국에 계시니 번역본을 접하시기가 쉽지 않으시겠네요.